국내항공역사  
대한항공공사의 설립
 

우리나라 민항 개척자였던 신용욱·대한국민항공사가 막을 내리고 1962. 3. 14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결되고 3. 23 제정 공포된 대한항공공사법(법률 제1040호)과 4. 26 제정 공포된 동법 시행령에 의하여 1962. 6. 15일·6. 18일에 창립총회가 개최되고 6. 19일에 등기를 마침으로써 대한항공공사(KOREA AIRLINES CO. LTD 약칭 KAL)가 설립되었다.

정부가 국영항공사인 대한항공공사를 설립한 것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산직전 상태에서 허덕이는 대한국민항공사를 흡수하고 우리나라 민항 사업의 급속하고도 영구적인 발전을 위해서였다. 당초 계획은 항공사업 성격상 루프트한자, 일본항공, 스칸디나비아항공, 에어프랑스, 펜암항공 등 세계 주요항공사의 장점을 살려서 정부 50%, 민간 50%의 투자비율로 관, 민, 공영을 계획하였으나 민간항공사 자본의 취약성으로 100% 정부출자의 국영항공사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대한항공공사는 발족 초기의 의욕적인 구상과는 달리 국제선 취항의 부재상태로 1962. 10. 26 주식 전부를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으나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대한항공공사에서는 1952년·1953년에 대한국민항공사에서 도입한 DC-3 항공기 2대·DC-4 항공기 1대를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일본에서 대대적인 정비수리를 하고 1963. 10. 3 국내선에 취항하였다.

아울러 1962. 12. 2 한국인 기장 8명으로 6개 국내 정기항공노선 조종간을 잡게 함으로써 외국인 기장이 자취를 감추게 되어 자주적인 운항을 개시하였으나 중형기 1대 값에 불과한 자본금으로 발족하였던 대한항공공사는 항공기 절대량 부족, 노후기종의 대체불능, 정비기술과 시설미비 등으로 경영상의 결함이 드러났다.

이때 이미 노스웨스트, 국태항공(Cathay Pacific Airways), 중국민항공공사 등은 DC-8, 콘베어 880 등 제트여객기를 운항하고 있어 경쟁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대한국민항공사가 적자를 무릅쓰고 8년간 지켜왔던 동남아노선(서울-홍콩-대만) 재취항까지는 실로 5년 반이 지난 1967. 6. 1일 이었다.

대한항공공사는 한일국교 정상화 기본조약 조인 1년 7개월전 1963. 12. 28 일본항공과 상무협정을 맺고 다음해 1964. 2. 28 정부승인과 함께 한일 정기항공노선을 개설하였으며, 3. 17 오전 10시 20분 F-27 항공기로 여의도 비행장에서 서울-오사카 한일 노선을 취항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그 후 1965. 9. 1 부산-후쿠오카, 1968. 7. 25 서울-동경노선을 취항하였다.

한편 대한항공공사는 네덜란드 포커사의 F-27 항공기 2대를 1964. 1·2월에 도입하였고 4·5월에는 미국 유니버설항공으로부터 FC-27 항공기 2대를 추가로 도입하였다. 또한 1967. 7. 6 정부는 미국 수출입은행 차관으로 맥도널드 더글러스사 DC-9 항공기 도입을 승인하고 1967. 7. 23 김포국제공항에 첫 착륙하여 우리나라 민항공 사상 최초의 제트여객기 시대를 개막하여 8. 14 서울-대만-홍콩노선에 8. 19 서울-오사카노선에 취항하였다.

그러나 DC-9 제트기는 국제선에 취항한지 한 달이 안된 9. 1 오사카 공항 이륙 직후 엔진고장으로 비상 착륙하는 사고로 서울-동경 노선 개설이 무기 연기되는 등 동남아 노선도 휴항에 들어가 1968. 3 DC-9이 재등장하기까지 6개월 동안 모든 국제선은 외국항공사에 의하여 독점 운항되어 대한항공공사의 경영은 날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정부는 우리나라 국가경제 발전과 더불어 민간자본도 크게 성장하여 항공산업의 자본금 부족에서 오는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1967년 민영화를 계획하였고 1968년 대한항공공사를 민간에게 불하하기로 결정하고 1969. 2. 28 대한항공공사를 한진상사에 15억원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민영화하여 국영항공사 시대를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