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역사  
1970년대의 항공운송 현황
 

대한항공공사 민영화 이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낸 것은 국내 노선망 확장이었다. 민영화전인 1969년 2월 현재 대한항공공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부산, 대구, 제주, 전주, 광주, 목포, 강릉, 속초, 삼척을 연결하는 9개 도시 8개 노선망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노선망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국내 노선의 운영에 있어서 상당한 적자를 나타내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배려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한항공공사가 민간기업인 (주)대한항공에 이양되자 1969년 7월 20일 서울-포항 노선의 신설을 시발로 국내선이 급격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급속하게 확장된 국내 노선망은 운영과정에서의 문제가 발생하여 몇 차례 조정되기는 했지만 1971년 말에 이르러 15개 도시, 17개 노선에 취항하는 순환 노선망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1973년부터 불어 닥친 제1차 석유파동은 항공사업 의욕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로 인해 국내선 운임은 1974년 2월 3일 60%나 인상되었고 국제선 요금도 네 차례에 걸쳐 24%나 인상되었다. 자연히 국내 노선망에도 감축운항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973년 8월 14일 강릉-대구-부산 노선의 휴항을 시작으로 1974년 3월 20일까지의 강릉-대구-부산, 부산-속초, 서울-포항, 대구-광주, 서울-군산, 부산-광주, 서울-전주, 서울-마산, 서울-삼척 등 9개 노선이 휴항하거나 폐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기간 동안 국내선 수송실적도 크게 줄어들었다. 국내선 이용객은 1969년 607천명에서 1973년 1,278천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으나 석유파동의 여파가 횝쓴 1974년에는 991천명, 1975년에는 928천명, 1976년에는 786천명으로 급격히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국내선 여객의 감소추세는 1977년 1,092천명을 고비로 회복되기 시작하여 이후 안정적인 증가를 보였다.

 
<표 1-9> 1970년대의 항공수송실적
 
년 도 국 제 선 국 내 선
여 객 화 물 여 객 화 물
실적(천명) (L/F) 실적(천명) (L/F) 실적(천명) (L/F) 실적(천명) (L/F)
1969 607 68.0 1,045 74.1 89 50.1 1,589 52.1
1970 967 67.3 1,497 64.0 241 54.9 3,563 58.4
1971 1,150
64.5 1,370 61.9 313 51.4 7,676 52.9
1972 1,130
70.3 979 64.1 510 64.2 13,839 46.2
1973 1,278 80.0 1,196 66.3 936 63.5 25,739 44.5
1974 991 64.9 2,155 54.1 933 58.9 39,025 48.1
1975 928 82.4 2,714 65.5 1,145 61.1 50,952 50.4
1976 786 74.8 2,579 55.5 1,291 62.7 55,921 50.6
1977 1,092 74.2 3,352 61.2 1,385 64.4 60,184 52.2
1978 1,448 81.5 4,277 60.2 1,662 66.3 75,116 57.4
연평균 증가율 10.14 % 16.80 % 38.44 % 53.49 %
   
 

국내선 화물 수송량은 1969년 1,045톤에서 1971년 1,370톤으로 증가하였으나 1972년에 979톤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1973년 1,196톤, 1974년 2,155톤 등으로 차츰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1978년에는 4,277톤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16.8%의 증가율을 보였다.

국제선 여객은 석유파동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증가를 보였지만 이는 여객의 증가보다는 노선의 확장에 따른 공급력의 증대에 기인한 것이었다. 국제선 여객은 1969년에는 8만9천명에 불과 하였으나 1971년 31만3천명, 1973년 93만6천명, 1975년 114만5천명, 1977년 138만5천명, 1978년 166만2천명 등으로 연평균 38.44%의 매우 높은 증가율을 나타내었다.

국제선 화물은 1970년대 초반에 급속한 증가율을 보였지만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증가율이 둔화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1969년 1,589톤으로 1971년에는 7,676톤으로 전년대비 85.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1976년에는 55,921톤으로 전년대비 9.8%, 1978년에는 75,116톤으로 전년대비 24.8% 성장하는데 그쳤으나 연평균 증가율은 53.49%로 놀라운 신장세를 보였다.

외래객의 입국 현황도 1974년을 제외하면 꾸준히 증가했다. 1971년 232,795명이었던 외래객 입국자수는 1973년에 679,221명으로 늘어났으나 1974년에는 517,590명으로 전년대비 23.8%나 감소했다. 그러나 이후 10% 이상의 증가를 나타냈고 국내 정치 상황이 혼란했던 1979년에는 전년대비 4.3%의 증가에 그쳤다

   
 
<표 1-10> 1970년대의 출입국 현황
 
년 도 외 국 인 내 국 인 관광수지
(US$1,000)실적(천명)
입국자(명) 전년대비(%) 출국자(명) 전년대비(%)
1971 232,795
34.3 76,701
4.3 37,575
1972 370,656
59.2 84,245
9.8 70,441
1973 679,221 83.2 101,295
20.2 252,450
1974 517,590 -23.8 121,573
20.0 130,953
1975 632,846 22.3 129,378
6.4 109,920
1976 834,239 31.8 164,727
27.3 228,777
1977 949,666 13.8 209,698
27.3 267,316
1978 1,079,396 13.7 259,578
23.8 200,087
1979 1,126,100 4.3 295,546 13.9 -79,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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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1970년부터 1978년 사이에 개최된 네 차례 한미항공협정 개정회담과 기타 각국 정부와의 항공회담에서 정부는 우리나라 항공운항 노선권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1978년 워싱턴회담에서는 종전에 균형을 잃고 있었던 대미 노선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오랜 숙원이었던 서울-뉴욕노선을 개설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국위를 선양하였으며 항공노선의 국제적 확충에 뜻 깊은 전기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