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역사  
한국항공대학교의 발전
 

1968년 12월 31일에는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에 따라 교통부 소관인 국립항공학교는 문교부 소관으로 이관되었고 한국항공대학으로 명칭도 개칭되었다. 1970년 12월 22일에는 운항관리학과를 분리하여 항공운항학과와 항공관리학과로 하였으며 각각 입학정원을 30명으로 하여 총 입학정원은 180명으로 하였다.

1974년 6월 1일에는 교통부로부터 수색비행장을 인수하여 항공대학이 운영하게 됨에 따라 항공관제소를 부속기관으로 두게 되었다. 1976년 12월 31일에는 항공운항학과와 항공관리학과의 입학정원을 각각 10명씩 증원하여, 5개 학과(항공운항학과, 항공관리학과, 정비공학과, 항공통신공학과, 항공전자공학과)에 200명의 입학정원을 갖게 되었다.

1978년 10월 31일에도 학생증원이 있어 항공운항학과 40명, 항공관리학과 50명, 항공기계공학과 100명, 항공통신공학과 50명, 항공전자공학과 60명, 총계 300명의 입학정원을 갖게 되었다.

문교부는 한국항공대학을 운영함에 있어 국고 예산지원 등의 한계로 인하여 대학의 내실과 발전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의 민간항공 산업분야는 항공운송사업의 확장과 더불어 항공기 제조사업에 착수하려는 정책변화가 있어 항공산업을 주도할 고급 두뇌의 양성과 효율적인 산.학.연 협동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절실하여 1979년 1월 10일 국립학교 설치령의 개정에 의거 본 대학을 학교법인 정석학원이 인수하게 되었다.

정석학원은 대학을 인수한 때부터 7개년 내에 내자 70억원과 차관 380억원을 투입하여 교사와 실습공장의 신축, 최신 실습기자재의 도입 등을 추진하는 한편 대학원 과정의 설치, 항공전문대학과 부속 항공공업고등학교 및 부속 연구기관의 신설을 통한 항공분야의 계열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당시 항공대학은 5개학과(항공운항학과, 항공관리학과, 항공기계공학과, 항공통신공학과, 항공전자공학과)에 입학정원이 300명, 재학생 907명, 교수39명이었으며 부지 23,625평 위에 연건평 2,744평의 건물과 4,000평의 체육장, 232평 규모의 항공기 정비공장 그리고 실험실습용 항공기 13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학재단 운영시기는 대학으로서는 그 동안 부진했던 교육의 내실을 기하고 교세 확충을 이룩하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크게 기대되었다. 그러나 인수 초기부터 정치적인 상황의 급격한 변화와 현 위치에서의 발전을 제한하는 제반 법령(도시계획법, 군사시설보호법,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해 대학은 정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1979년 3월 5일에는 조중훈 한진그룹회장이 초대 정석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였으며 대학원 석사과정(항공공학과, 항공전자공학과 : 정원 계 40명)을 1979년 12월 5일에 인가 받고 1980년 10월 2일에는 항공관리학과를 항공경영학과로 명칭을 변경하고 8월 30일 정부의 교육개혁조치에 따라 졸업정원제가 실시되어 입학인원 390명에 졸업정원이 300명이 되었다.

1984년 10월 1일에는 전자계산소를 대학 부설기관으로 설치하고 같은 해 10월 5일에는 항공통신공학과를 항공통신정보공학과로 명칭을 개편하였다. 1986년 3월 1일에는 대학 부설 비행교육원을 설치하였고 동년 10월 23일에는 교통부로부터 부설 비행교육원이 항공종사자 전문교육기관으로 지정 받아 우리나라 비행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세계적인 대학들과 학문과 과학기술의 정보를 교환함으로서 대학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고 국가와 사회에 봉사해야 하는 대학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하여 본 대학의 교육 및 연구특성과 유사성을 가진 외국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바 있다.

1979년 1월 31일에 미국 Northrop 대학과 자매결연을, 1990년 2월 14일에는 ICAO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캐나다 McGILL 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1991년 5월 27일에는 소련의 레닌그라드 항공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어 학술.문화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93년 11월 4일에는 중국 남경항공우주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학술.문화교류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국제학술교류의 확대를 지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