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역사  
항공인력 양성
 

우리나라 비행학교는 신용욱이 한국인으로 1930. 5. 15 여의도에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한 것이 처음이다.


신용욱

 

신용욱의 최초 비행학교 설립의사를 밝힌 것은 1927. 12. 15 두 번째 모국방문 비행회를 마치고 그를 위한 환영 연회석상이였다. 그러나 26세 식민지 청년이 전력자원(戰力資源)이 될 수 있는 비행사 양성기관 설립은 일본정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신용욱은 조선 철종 부마인 박영효를 설립추진위원장, 위원은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변호사 김병로 등 신망이 두터운 인사로 구성하여 재정적인 지원도 기대하였다

추진위 구성 후, 1928. 6 4 추진위원총독부 체신국장 등 관계관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비행학교 창립 간담회를 갖고 4개월 뒤 10월에 사재 5,000원(圓)을 들여 여의도 교사가 준공되자 총독부에서 학교인가를 받고 미국에 비행기 1대를 주문하여 1930. 4 비행기가 도착하자 바로 5. 15 정식 개교하였다

 

또한 신용욱은 조선비행학교를 운영하면서, 일본 나까지마 비행기 제작소의 지도리식 4인승 쌍엽기(雙葉機)를 도입하여 1930년 9월부터 서울 상공 일주, 인천 왕복 유료비행을 실시하였다. 탑승요금은 서울상공 일주(10분) 5원, 인천왕복(20분) 10원으로 당시 쌀 1가마(13원)에 비해 아주 고가이었으나 대성황을 이루었음에도 당시 보험제도가 없어 승객들에게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 사망해도 이의 없다”는 각서를 받아 그 때마다 시비가 일어 비행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 유료비행은 신용욱이 조선항공사업사를 설립하기 직전인 1935년까지 계속하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정부가 항공기 생산기술 향상과 조종사, 기관사의 수요 증가에 대비, 항공국 직할 승원양성소를 설립하고, 전액 관비로 양성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자, 조선총독부도 1943. 4 항공과에 국민항공계를 신설, 전문학교이상 학생 약 20여명을 선발, 조종훈련을 실시하였고, 1944년 각 활공단체를 통합한 조선국방항공단을 결성하고 4-5명의 지도원을 촉탁으로 채용, 중학생의 글라이더 훈련까지 담당하게 하였다.

또한 1944. 1부터 초등학교 졸업자 중에서 40여명을 선발, 약 3개월간 초보적 정비훈련 과정을 수료시키고 비행부대 비행기 제작소에 취업시켰으며, 중학교 3년정도 수료자 20여명을 선발하여 6개월간 정비교육을 실시하였다.

<1930년대 조종사 자격시험 내용>
종 별 비행시간 학과시험 실기 시험
3 등 조종사 20시간 항공기학, 발동기학
항공법규, 기상학
고도 800m에서의 8자 비행
S/W Off 상태에서 착륙기량 체크
2 등 조종사 50시간 - 시험관이 지정하는 경로와 고도에
따라 비행하는 야외비행(항법) 시험
1 등 조종사 100시간 - 삼각항법이 부가, 비행거리가 길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