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역사  
항공기 제작
 

조선항공사업사는 서울 신길동에 글라이더제작소를 설립, 1936년부터 붐을 일으킨 글라이더를 제작 판매하여 많은 이익을 보면서, 제작소 종업원(약 300명)을 큰 규모로 운영할 즈음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 육군은 조선항공사업사 소유 비행기를 모두 징발하였으나, 일본해군은 조선항공사업사 손해를 감안, 1942. 6 신용욱에게 항공기 제작소 설립을 요구, 부산 부전동에 20만평 대지를 구입 공장건물을 신축하게 하였다.

이 조선항공기제작소는 신용욱 일본해군이 50%씩 출자, 1944. 2. 20 조선항공기공업(주)을 설립하자 일본해군은 동경 나까지마 항공기공업(주) 시설을 그대로 이전, 공장장에 예비역 해군중장 사꾸라이를, 기술주임에 예비역소장을 임명, 신용욱은 사장에 취임하였으나 실질적 운영은 일본해군이 주로 하여 이때 조선항공공기업이 해군 1, 2, 3호기만 생산, 해방으로 미군정에 의해 적산(敵産)으로 몰수, 군정에 귀속되고 말았다.

일본해군과 별도로 1942. 7 조선총독부는 항공기 제조사업법을 제정하여 포탄 생산업체인 소화비행기 평양제작소를 미쓰이 광산주식회사 조선비행기 제작소로 개편 설립하고 1944. 10. 2 조선군사령부는 화신산업(주) 박흥식에게 조선비행기공업(주)을 자본금 5,000만원(圓)으로 경기도 안양에 건설하게 하고, 각 지역 철도공장 철공소 등을 지원 재편성함으로써 발동기 및 기타 기능부품을 조선 내에서 생산하기 위해 일본 업자 유치를 계획하였으나 항공기 제조 재료가 생산되지 않아 계획단계에서 끝나고 말았다.

이에 총독부는 각계전문가 37명으로 광공국을 신설하고 일본에서 생산되는 항공기 생산재료, 공작기계, 특수금속 등의 도입에 주력하지만, 해상수송의 마비 기술자 영입 부진으로 만주 비행기제조주식회사 지원하에 발동기 없는 초보연습기 100여대가 생산되었을 뿐이였다.

 
<항공기 제작소 현황>
 
회 사 명 소 재 지 생 산 품
미쓰이광산주식회사, 조선 비행기 제작소 평양 미림리 육군 연습기
조선 비행기 공업 주식회사 시흥군 안양리 육군 연습기 부품
조선 항공기 공업 주식회사 부산 부암리 해군용 부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