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항공역사  
(주)대한항공의 설립

민영항공사의 정착 /대형여객기 시대의 개막/1980년대의 도약

 


민영 항공사의 정착


민영화 당시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한진상사의 조중훈 회장은 회사명을 (주)대한항공으로 바꾸고 총 514명의 대한항공공사 직원을 그대로 인수한 다음 곧바로 경영합리화 작업에 가장 먼저 착수하여 종래의 3실, 6부, 16과 3실(현업), 1공장체제를 대폭 통폐합하여 2실, 5부, 3사무소, 14과로 축소 개편하고 인사관리제도 및 재정정책도 대폭 수정하였다

경영합리화조치를 단행한 대한항공은 우리나라 민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항공사업이 발달하기 어려운 조건들은 지정학적조건의 불리, 경쟁력에서의 취약성, 기재의 노후, 전문 기술인력의 부족 등이었다. 이들 문제중 지정학적 조건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나머지 문제들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여 대한항공은 5개년 투자계획을 수립하여 해당년도의 목표를 설정했다.

이 계획의 주요 골자는 해외노선의 확충과 신기종의 도입이었다. 특히 해외 노선 확충은 동남아 노선에 머물지 않고 미주와 유럽까지 노선을 확장하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전초작업으로 1971년 초 국내항공노선을 조정하여 9개 도시를 15개 도시로 8개 노선을 17개 노선으로 일일 30회운항을 49회운항으로 1971년 말에는 새로운 항로를 신설하여 나갔다.

이어 대한항공은 한일 노선을 대폭 증편하고 동남아노선에 대한 확장작업에 착수하여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국제경쟁력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여 국제선 수송실적 점유율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대한항공의 경영합리화와 노선의 확장은 곧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 1968년 월30,000명 수송인원을 민영화 4개월 만에 1969년 6월에는 2배가 늘어난 60,000명을 수송하였으며, 민영화 4년째인 1972년에는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편 민영화 10주년을 맞은 1979년 3월에는 급격한 사세의 신장으로 국제 노선망이 급격히 확장되어 15개국 23개 도시에 취항하였으며, 연간 수송실적은 여객의 경우 1978년에 비해 4.5배에 달하는 315만7천명, 화물은 25배에 달하는 8만5천톤을 수송하였다. 이는 1979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가입국 145개국중 국제선 총수송실적 순위에서 10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민영화 10년만에 세계 유수의 항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급신장을 이루었다.